우리 리서치 PLUS

모든 것은 작은 곳에서 온다

  • 매일경제신문 신현규 실리콘밸리 특파원
  • 2021-02-22
  • 조회수 691
분류 생각 더하기
발행호수 2021-02
저자 매일경제신문 신현규 실리콘밸리 특파원
   

우리 리서치  PLUS - 2021년 2월호 -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생각 더하기: 모든 것은 작은 곳에서 온다

 

균열은 조그마한 틈에서 발생한다. 균열이 점차 다른 곳으로 번져가면 그건 전체의 파괴가 된다. 산업이 변화하는 과정 또한 그렇다. 안정적으로 영위되고 있던 서점산업은 인터넷이라는 물결이 흘러들어오면서 ‘인터넷으로 책을 팔아보자!’라는 아이디어를 냈던 헤지펀드 임원 제프 베조스에 의해 와해되고 파괴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시가총액 상위기업들이 그렇듯, 아마존 역시 워싱턴 밸뷰 지역의 작은 차고에서 시작했다. 집도 절도 없는 작은 회사였다.

 

최근 코로나 판데믹의 전파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는 ‘클럽하우스’라는 앱이 그렇다. 마치 온라인에서 파티하듯이 사람들이 옹기종기 방에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음성으로 나누는 이 앱은 최근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그런데, 이 앱 역시 지난해 처음 나온 이후 소수의 이들에게만 공개됐을 뿐이었다. 대신 초기 유저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아서 ‘대체 클럽하우스 앱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가’를 많은 이들이 궁금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앱은 이제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심지어는 틱톡과 같은 기존 소셜미디어들이 장악하고 있던 소비자들의 시간을 점령해 나가고 있다. 다시 말해 소수의 열광적 사용자들이 만든 소셜미디어 시장의 균열이 점차 확산되면서 기존 질서의 파괴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클럽하우스라는 앱이 처음 시작됐던 8개월 전만 하더라도 사용자는 10명이었다.

 

작은 것이 세상을 바꾼 일이 최근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바로 그 사례다. CNN의 국제문제 전문기자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그의 책 “팬데믹 이후 세상이 배워야 할 10가지 교훈”(Ten Lessons for a Post-Pandemic World)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1조 달러 가량의 엄청난 예산 중에서 3/4 가량을 국방에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은 미생물 하나로부터도 우리를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중국 우한에서 번진 작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의 기존 질서를 파괴했다. 팬데믹의 시작은 매우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서부터였다.

 

사람들은 흔히 작은 변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무시한다. 너무 작기 때문에 큰 조직에서는 “그거 해 봐야 티가 나겠어?”, “우리같은 큰 회사들이 해야 할 일은 큰 일이야”라면서 받아들여 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큰 조직에서 일하던 이들이 회사를 뛰쳐나와 작은 중소기업을 가거나 스타트업을 만든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애걔?’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연매출 900억원에 가까운 스타트업 ‘스푼라디오’를 만든 최혁재 대표는 LG그룹을 그만두고 창업을 한 뒤 첫 회사가 힘들어지자 “거봐 안될 줄 알았어”라는 이야기들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은 변화가 결국 전체를 파괴시킨다. 파괴적 혁신이라는 말을 만들었던 크리스토퍼 크리스텐슨 전 하버드대 교수(2020년 작고)는 소수의 사람들이 열광하는 새로운 제품에 의해 기존 산업은 파괴된다고 말한다. 이 간단한 논리는 오늘날 실리콘밸리를 지배하는 사상이 되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 있는 큰 회사들도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애플은 최근 자신들의 조직이 어떻게 혁신에 맞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밝힌 글 ‘어떻게 애플은 혁신을 위해 조직화되어 있는가’(How Apple is Organized for Innovation)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게재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애플의 직원들이 1cm 정도 되는 아이폰의 가장자리 테두리를 개선시키기 위해 조직적 역량을 얼마나 집중시키는지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왜냐하면 작아보이는 1cm라 하더라도 아이폰의 판매량(약 2억대)을 곱하면 2억cm가 되기 때문이다. 연결된 세상에서는 작은 것이 큰 차이를 만든다.

 

혁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위기 또한 작은 곳에서 올 지 모른다. 미국의 9.11 테러사태는 현대 역사상 정말 큰 사건이었는데, 시작은 전 세계가 외면했던 지역 ‘중동’에서 시작됐다. 한국 등 아시아의 1997년 금융위기 또한 “아시아의 은행 시스템은 위험하다”라는 미국 월가의 인식변화에서 시작되었다. 보이지도 않는 생각과 심리의 작은 변화가 시작이었다.

 

특히 지금은 모든 것이 빠르게 진화하는 시기다. 금리가 낮다는 것은 시간에 대한 선호도가 낮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낮은 금리에 돈을 빌려서 뭐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나은 상태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믿는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이 작은 변화를 크게 키우는 것(Scale up)에 투자하고 있고, 결국 미래는 더 빨리 다가오고 있다. 작은 균열들이 전체를 파괴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혁신이 산업을 파괴시키는 속도와 위험요인들이 건강한 세계경제를 파괴시키는 속도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빨라지고 있다. 그래서 작은 균열이 과거보다 더 빨리 세상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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