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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양극화가 더 깊어지기 전에

  • 매일경제신문 경제부 이진명 부장
  • 2020-12-21
  • 조회수 507
분류 생각 더하기
발행호수 2020-12
저자 매일경제신문 경제부 이진명 부장
   

우리 리서치 PLUS - 2020년 12월호 -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생각 더하기: 금융양극화가 더 깊어지기 전에

 

풍요가 절정에 이르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있다. ‘양극화’다. 양극화는 풍요를 자양분으로 자라나 공동체 파멸의 씨앗을 키운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는 ‘로마건국기’에 이렇게 썼다. “포에니전쟁에서 승리하고 전쟁배상금과 전리품, 전쟁노예가 유입되며 호황이 최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로마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두 개의 마음’이 로마 인민의 심장을 갈라놓기 시작했다.” 로마를 갈라놓은 두 개의 마음이 곧 양극화다. 일부 귀족에게 토지와 부가 집중되고 평민들은 헐벗기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종국에는 로마 공화정이 파국을 맞았다. 로마뿐만이 아니다. 중국 후한시대의 멸망을 촉발한 황건적의 난, 청나라 멸망을 재촉한 태평천국의 난, 앙시앵 레짐을 무너뜨린 프랑스혁명 등도 그 근저에는 양극화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발생한 아랍의 봄과 이집트혁명도 극심한 양극화 상황에서 곡물가격 폭등이 기폭제가 되어서 일어난 사건이다.

 

양극화의 시대가 다시 엄습하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양극화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2015년 앵거스 디턴 교수가 소비, 빈곤, 복지에 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로 양극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매년 초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전미경제학회에서도 최근 ‘양극화’가 핵심 주제로 자리잡았다. 2019년에는 ‘세계 빈곤경감을 위한 실험적 접근’이라는 논문으로 배너지, 뒤플로, 크레이머 세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하며 양극화 문제는 더욱 주목받았다.

 

국내에서도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부의 편중된 분배뿐만 아니라 교육의 양극화, 일자리 양극화, 의료·보건의 양극화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 현상이 불거지고 있다. 금융양극화도 그 중 하나다. 저금리 대출은 신용 좋은 부자들에게 편중되고, 정작 돈이 절박한 서민들에게는 고금리, 그것도 소액으로 한정된 대출기회 뿐이다. 금융상품 역시 안전한 고수익 상품은 VIP 부자고객들에게 우선 배정되고, 서민들은 0%대로 떨어진 정기예금이나, 고위험 펀드 상품을 전전한다. 이같은 금융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거듭되는 양극화의 폐해를 알면서도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양극화가 인간사회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욕심은 인간의 본능이다. 남들보다 더 가지려는 욕구는 모든 인간에 내재해 있다. 부자든 빈자든, 강자든 약자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정된 재화를 더 많이 차지하는 것에 있어서 부자나 권력자들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양극화가 발생한다. 저서 ‘21세기 자본’으로 일약 스타가 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노동소득성장률보다 높다”는 말로 양극화 과정을 설명했다. 부자가 재산을 축적하는 속도가 가난한 자의 그것보다 빠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것이다. 굳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부자가 돈을 더 번다는 사실은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신약성서 마태복음에도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욱 많이 가져 풍요로워질 것이고,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도 빼앗기게 될 것이다”라고 쓰여있다. 금융양극화도 마찬가지다. 신용좋고 안전한 부자들에게 금리를 낮춰서라도 더 빌려주고, 상환이 불투명한 서민들에게는 높은 금리를 받아 부실위험을 최대한 기피하려는 게 금융의 생리요, 본성이다. 그리고 이같은 현상은 자연스럽게 더 심화하고 있다.

 

사회의 공멸을 피하려면 양극화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을 억지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강제가 필요하다. 인류는 양극화의 확대를 막기 위해 오래 전부터 다양한 인위적 강제 수단을 강구해왔다. 고대사회에서는 왕권으로 일부 귀족에게 편중된 부를 강제로 재분배했다. 때로는 종교가 양극화를 막는 기능을 했다. 어떤 종교든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고,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라는 계명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중세와 근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대표되는 도덕률이 양극화의 진행을 더디게 했고, 근대 법치주의 사회에서는 세금과 복지를 법으로 강제함으로써 양극화 확산을 막는 버팀목 역할을 했다. 현대사회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 NGO(비정부기구) 활동, 시민단체의 기능 등이 힘을 보태고 있다. 이처럼 양극화를 막는 인위적 강제 수단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체제가 위협받는다.

 

금융양극화도 자연스러운 금융시장의 기능에만 맡겨둘 수 없다. 일정 수준의 인위적 강제가 불가피하다. 금융양극화가 더 깊어지기 전에, 개별 금융회사들이 먼저 부자들에게 편중된 대출기회, 자본소득의 기회를 서민들에게 강제로 이전하는 작업에 앞장섰으면 한다. 이윤 추구, 위험 기피라는 금융기업의 본능을 거스르는 불편함이 따르겠지만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 금융양극화 역시 종국에 가서는 금융시장 공멸의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가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금융양극화를 완화하겠다고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단체가 나서게 된다. 그 때는 시장왜곡이라는 부작용까지 더해질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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