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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생멸 통계에 담긴 제조기업의 고군분투

  •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이심기 부장
  • 2020-11-24
  • 조회수 645
분류 생각 더하기
발행호수 2020-11
저자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이심기 부장
   

우리 리서치 PLUS - 2020년 11월호 -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생각 더하기: 기업생멸 통계에 담긴 제조기업의 고군분투

 

우리나라에서 ‘활동중인’,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기업의 숫자는 약 3만개다. 가장 최신인 2018년 통계청 기업생멸통계 자료 기준으로 종업원 50인 이상 기업의 숫자는 2만 970개다. 2014년 3만 3,428개를 찍으며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감소 추세다.


이중 종업원이 300인 이상인 대기업 숫자는 3515개(11.7%)이다. 절반이 넘는 1만 600여곳은 종업원 50~99명 기업이다. 2014년 1만 8,792개로 정점을 보인 후 감소해 2018년 1만 6,463개로 줄었다. 경제활동이 정체 내지는 부진하다는 방증이다.


기업도 법인격(法人格)을 가진 독립체다. 생로병사가 있다. 기업 생태계가 건강하기 위해선 새로운 기업이 끊이지 않고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의 종업원 50인 이상 신생기업 숫자는 연간 500곳 안팎이다. 2014년 1013개를 기록하는 등 2011년부터 4년 연속 1,000개 수준을 유지하다가 2016년 553개, 2017년 424개, 2018년 512개를 보이며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기업활동은 경제 성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활동기업와 신생기업의 숫자가 비교적 많았던 2014년 경제성장률은 3.2%였던 반면 2018년은 2.9%에 머물렀다. 제대로 된 기업의 활동이 많을수록 성장률도 높다는 뜻이다.


소멸기업의 숫자도 줄고 있다. 2014년 511개였던 소멸기업은 2017년 317개로 감소했다. 자발적 폐업과 부도 처리되는 경우 모두를 포함한 숫자다. 하지만 반길 일은 아니다. 부도와 파산은 자본주의의 토양이다. 이를 거름삼아 새로운 기업이 탄생하고 자란다. 활동기업과 신생, 소멸기업의 숫자가 모두 감소하는 건 경제 활력이 그만큼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마치 출산합계율이 0.9%에 그치며 고령사회로 치닫는 한국의 인구 구조와 닮은 꼴이다.


하지만 통계를 보는 프레임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예를 들어 창업 기업의 기준을 통계청이 발표한 1인 이상으로 넓히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선 창업 숫자가 2018년 92만개에 달해 3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가히 ‘창업 열풍’이 불면서 경제활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디테일을 들여다보면 우리 경제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우선 92만개중 종사자가 1명이거나 연 매출액이 5,000만원 미만인 영세기업이 82만1000개로 전체의 89.3%를 차지했다. 업종 역시 숙박과 음식점, 부동산, 도·소매업 등이 대부분이었다.


소멸기업도 마찬가지다. 그해 사라진 기업 69만 8,000개의 92.2%(64만 4,000개)가 1인 기업이었다. 자본과 조직력이 약한 기업이 시장경쟁에서 가장 먼저 도태된다는 건 자연스런 귀결이다. 하지만 사멸기업 5곳중 한 개 꼴인 21.1%가 60대 이상이 대표자로 있는 곳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후에 시작한 생존형 창업이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고령인구의 빈곤율은 47.2%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기업생멸 통계 곳곳에 경제 활력도가 떨어진다는 징후를 보여주는 ‘팩트’가 들어있는 셈이다.


기업생멸통계에서 드러난, 우리 경제의 아쉬운 지점은 제조업의 위축에 있다. 경제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인 고용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2018년 활동기업의 총고용은 2041만명으로 총인구 5,163만명의 39.5%를 차지한다. 업종별로는 제조분야 고용인원이 504만명이다. 영세 자영업이 대부분인 도·소매(358만), 숙박·음식(178만), 부동산(170만)을 합치면 706만명으로 제조업 종사자보다 약 200만명, 40%가 많다. 게다가 활동기업 625만개중 492만개(78.7%)는 1인 고용이다. 10명중 8명은 셀프고용이라는 얘기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최근 “제조업을 한국 경제의 보석으로 불러 마땅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한복판에서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며 “제조업은 이제 진정한 영웅”이라고 썼다. 구체적인 근거도 들었다. 3분기 제조업의 성장 기여도는 1.8%포인트로 국내총생산 성장률 1.9%의 90% 이상을 담당했다고 강조했다. 거시 지표에도 한국 경제를 끌고 온 기업들의 고군분투가 농축돼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제조기업의 활력을 높이기 위한 핵심은 기업활동 자유에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인들을 만날 때마다 “기업의 싹을 자른다”, “대기업을 잡아 누른다고 새로운 기업이 생기느냐”는 우려와 탄식을 쏟아낸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급기야 “경제가 정치의 도구가 되구냐”라는 날센 비판을 쏟아냈다. 정치가 기업활동에 위협이 되는 경제에는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기업생멸통계에는 우리 기업이 처한 현실과 경제상황이 숫자로 표현돼 있다. 그 이면에는 김 차관의 표현대로 변변한 제조기업들은 대부분 환경이나 입지 규제를 조금씩 어기거나, 그만 보증을 졸업하라는 구박을 받아가며 어떻게든 국내에 뿌리를 내리고 사업을 영위해온 현실도 담겨있다. 이제 우리 경제를 지켜온 진정한 영웅들의 역할에 걸맞는 대우를 할 때가 됐다. 입에 발린 격려만으로는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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