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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들어오는 실리콘밸리의 핀테크 스타트업

  • 매일경제신문 신현규 실리콘밸리 특파원
  • 2020-10-21
  • 조회수 369
분류 생각 더하기
발행호수 2020-10
저자 매일경제신문 신현규 실리콘밸리 특파원
   

밀려들어오는 실리콘밸리의 핀테크 스타트업 - 우리 리서치 PLUS 2020년 10월 [생각 더하기]

매일경제신문 신 현 규 실리콘밸리 특파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현재 가장 뜨거운 산업을 꼽으라면 핀테크가 반드시 포함된다. 한국에도 친숙해진 ‘로빈후드’(Robinhood)라는 주식거래 모바일앱의 예가 쉬울 듯 하다. 거래수수료가 전혀 없고, 설치하는 데 20분도 안걸리는 간편함에다, 찜해 둔 종목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장점 덕분에 이 앱은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다. 2014년 시 한달만에 고객 숫자는 10만명이 됐고, 2018년 300만명을 돌파한 뒤, 지금은 1,300만명이다. 폭발적’이라는 수식어가 충분치 못하다.

또 있다. ‘차임’(Chime)이라는 은행 서비스 앱은 은행 수수료를 완전히 없앴다. 별도의 저축계좌를 만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연 1%의 이자를 지급해 준다. 불편한 금융거래를 했던 미국 사람들에게는 매우 혁명적인 서비스다보니 최근 사용자가 800만명 정도로 늘었다. 처음 시작할 때인 2018년 이 회사 고객들은 100만명 수준에 불과했다. 기업가치는 17조원 정도로 로빈후드(약 14조원)를 넘어섰다.

사실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애플은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애플카드를 출시했다. 필자도 9개월째 애플카드를 쓰는 중인데 결제일, 지출내역 관리의 편리함은 일반 전화기를 쓰다가 스마트폰을 쓰는 것처럼 차이가 났다. 애플카드는 지난 한 해 동안 310만명의 고객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신용대출을 받아본 적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도 대출을 해주는 스타트업 ‘어펌’(Affirm)은 내년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믿을 것 하나도 없는 초기 스타트업 기업들을 위한 법인카드를 발급해주는 회사 브렉스(Brex) 역시 실리콘밸리에서는 인정받는 유니콘이다. 현지 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실리콘밸리에서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역사상 가장 많은 금액인 1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실리콘밸리의 핀테크 스타트업 열풍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지난 2분기 이후 유동성공급과 주가상승이라는 거시적 시장흐름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곳 벤처캐피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금융시장 만큼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진입하여 판을 뒤흔들기 좋은 곳이 없다. 첫째, 총 시장 규모(Total Accessible Market; TAM)가 크다. 미국 은행시장의 TAM만 해도 20조달러이며, 한국 은행산업은 40조원에 달한다. 스타트업이 전체 시장의 10%만 이라도 장악할 수 있다면 미국은 2조달러, 한국에서는 4조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조금만 흔들어도 큰 열매가 떨어지는 판이다. 둘째, 기존 은행들은 구조적 문제 때문에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정치적 이슈 때문에 지점 폐쇄를 하기 어렵고, 모바일·인터넷에 친하지 않은 기존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를 포기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모바일 전용으로 앱을 내놓는 금융스타트업과 기존 은행들은 애초부터 경쟁이 안되는 일이 벌어진다. 셋째, 기존 금융서비스들에는 많은 문제들이 존재한다. 낡은 신용점수 시스템 때문에 금융거래가 거의 없는 여성이나 스타트업 종사자들에게는 대출이 일어나지 않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증권거래나 은행거래시 수수료는 기존 금융회사로서는 포기하기 힘든 밥그릇이다.

하지만 핀테크 스타트업에게는 숙제범위 자체가 다르다. 이미 기존 고객 대상 서비스에서 수십조원 이상 돈을 벌고 있는 은행들에게는 신용 사각지대에 있는 고객들의 문제, 수수료가 비싸서 고민하는 고객들의 문제는 해결해야 할 숙제범위에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나 스타트업들은 이런 특정 고객들의 특정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큰 기회다. 소수고객의 특정한 문제를 해결한 다음, 거기서 얻은 데이터와 노하우를 사용해 더 큰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펌’이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에게 대출을 해줌으로써 데이터를 얻고, 그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신용모델을 만드는 것이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학교인 ‘와이컴비네이터’의 전 회장 샘 알트만은 이런 말을 했다. “다수가 조금 만족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극소수가 사랑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제품사용자들을 성장시키는데 훨씬 유리하다.” 누구나 생각하는 상식적 아이디어보다, 비록 성공가능성이 낮아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누구나 ‘그거 되겠어?’라고 말하기 쉽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훨씬 빨리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다수에게 제품을 팔 생각하지 말고, 소수의 사람들이 미친듯 열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라는 조언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이 기존 금융산업에 군침을 흘리며 노리고 있다. 기존 금융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알트만은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대기업 내부에서도 신사업을 통해 모두가 ‘그거 되겠어?’라며 손사래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패할 것 같고, 성공하더라도 당장 돈이 안될 것 같은 신사업 아이템이라 하더라도, 소수의 고객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과감하게 투자하고, 거기서 배운 바를 빠르게 사내에 확산시키는 것. 그것만이 살길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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